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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신앙 에세이들입니다. 읽으시는 중 하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 (엡 5:14)
제목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 (엡 5:14)
작성자 관리자 (ip:)
  • 작성일 2013-11-08 22: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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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 (엡 5:14)

 

   우리가 밤에 잠을 잘 자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쿨쿨 깊이 잘 수록 해로운 잠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잠(spiritual slumber)’입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영적 잠’에 대한 경고를 하면서 그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촉구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엡 5:14).” 그렇다면 ‘영적 잠’은 어떤 잠일까요? ‘영적 잠’은 본질적으로 ‘죄의 잠’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타락한 상태(fallen state)로 태어납니다. ‘타락한 상태’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첫째는 지적으로(in knowledge)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의지(in will)에서 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적 잠’에 취해 있는 사람은 [1]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상태에 있으며, [2] 의지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잡아당기면서 살아갑니다. 그 ‘자기중심적 성향’을 바울은 “속에 거하는 죄(롬 1:17)”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적인 잠, 죄의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지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신 중심에는 하나님에게 집중된 관심과 열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정신 중심에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관심과 열정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영적 상태’를 문제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잠’을 자는 그의 속에 위기의식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구원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에 대한 사탄의 책략은 그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그가 잠 속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죽음의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그렇지만 한 인간이라도 생명으로 오도록 일하시는 성령님의 관심은 이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 구원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엡 5:14)” 하나님을 찾도록, 구원과 생명을 구하도록 양심을 울리십니다. 마음에 도전과 촉구를 가하십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설교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에서 ‘죽음의 잠’이 어떤 잠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영적 잠’을 불타는 집 안에서의 잠으로 비유합니다. 불타는 집 안에서 잠자는 자는 화마(火魔)가 얼마나 무섭게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위기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꿈을 꾸는데 그 꿈은 “나에게 문제는 없어,” “내게 있어서 모든 것은 평안해” 하는 내용의 꿈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신이 충분히 영적으로 건강하며, 충분히 자유로우며, 구원 안에 있을 만큼 충분히 도덕적이고 선하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웨슬리(Wesley)는 ‘영적 잠’ 속에 있는 이 사람이 믿는 건강, 자유, 구원은 실제로는 ‘거짓 건강’이며 ‘거짓 자유’며 ‘거짓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영적 잠’ 속에 있는 것은 단순히 교회 밖 세상 사람들의 경우만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웨슬리는 조용하고(quiet), 이성적이고(rational), 호전적이지 않고(inoffensive), 성격 좋은(good-natured) ‘신학교수’가 영적으로는 ‘깊은 잠’ 속에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통적 교단에 속하여 자신의 ‘목회 업적’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교회 지도자도 실상에서는 ‘잠자는 자’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평신도가 참 ‘영적 새 탄생’은 체험하지 않은 채 ‘거짓 평안’과 ‘거짓 구원’ 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의 눈물’이라는 것이 있으나, 실제로 그것을 흘리는 자는 너무 소수다.” 교회 안에서 왜 어떤 사람은 분명히 흘려야 할 회개의 눈물은 흘리지 않으면서 구원에 대해서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까요? “구하라, 주신다”고 하셨는데 ‘구하는 고통’은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왜 자신의 구원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할까요? 실상을 말하자면 그 영혼이 ‘거짓구원’ 속에서 깊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기독교 사상가 키르케고르(Kierkegaard)는 죄인의 ‘교활함’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죄인 인간은 원죄(original sin) 안에서 ‘영적 게임’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1:1로 서야 한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그런데 참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설수록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죄가 드러날수록 자신이 회개도 해야 하고, 변화된 삶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이 상황에서 사람은 ‘의지적으로’ 영적 무지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괴로우므로, 자기 죄의 가증함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므로, 이 사람은 아예 ‘적당히 아는 선’ 이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적당히 아는 선’의 선택은 실제로는 ‘앎’보다는 ‘무지’에 대한 선택입니다. 즉 ‘교활’한 죄인은 영 깊은 데서 하나님과의 대면을 피하고자 ‘무지’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계속 거절하는 영의 무지는 그래서 단순한 무지가 아니고 교묘하게 ‘선택된 무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택된 무지’의 게임을 하는 영혼에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이 의미하는 진정한 거듭남(요 3:3)이며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생명의 관계’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이 소개하는 예수님의 비유 중 ‘바리새인과 세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바리새인은 적당한 기도, 적당한 회당(교회)생활, 적당한 선행 실천으로 자신의 영적 안전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믿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지 않은 종교적 ‘게임’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정직하게 되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은 ‘의지적으로’ 회피하면서 ‘편리한 무지’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 자였습니다. 그는 ‘영적 잠’ 속에 있었으며, 그 잠에서 깨어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바리새인 안에 하나님의 참 구원은 임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세리가 있었습니다. 그 세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빛 아래에서 자신의 ‘가증한 죄’를 직면하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울부짖으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눅 18:13, 14).” 이 세리는 ‘영적 잠’에서 깨어나는 진통 속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회개다운 회개’의 자리에 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직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외쳐지던 탄원을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혹시 적당한 종교생활을 하면서 “내가 이 정도 도덕적이고, 이 정도 ‘신앙적’이면 설마 지옥에는 가지 않을거야”라고 하면서 막상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정직하게 되어 서는 것은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정직하게 되어 서는 것이 두려워 ‘무지’ 속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영적인 잠’ 속에서 몽롱한 가운데 ‘거짓 구원’과 ‘거짓 안전’으로 자위(自慰)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쫓기던 닭이 머리만 덤불에 박고 자신이 잘 숨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앞에 철저한 정직을 가지고 서는 것을 회피하는 모든 사람이 이 닭과 같습니다.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철저한 정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 오직 그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오직 그가 하나님에 대한 바른 경외를 존재 중심에 갖는 자입니다. 바울의 경고와 촉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엡 5:14)" 다음의 찬송을 기도의 심정으로 불러 봅시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살림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복 되신 말씀 따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받아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주께로 옵니다

                                                   멸망의 포구 헤어나와 평화의 나라 다다라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주께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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