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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신앙 에세이들입니다. 읽으시는 중 하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다윗의 춤 (삼하 6:12-23)
제목 다윗의 춤 (삼하 6:12-23)
작성자 관리자 (ip:)
  • 작성일 2013-11-08 14: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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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의 춤 (삼하 6:12-23)

 

   프랑스의 수학자며 기독교 사상가인 파스칼(Pascal)은 “마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자신 만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The heart has its reasons which reason knows nothing of.)"라고 했습니다. 파스칼은 지금 무엇을 말하려고 할까요? 파스칼은 지금 ‘머리로 아는 하나님’과 ‘마음으로 아는 하나님’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으로 채워진 머리가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머리가 아무리 고수준의 지식으로 차 있어도 ‘마음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입니다. 파스칼은 한 인간이 마음(heart)에서 열망으로, 앙모로, 추구로, 사랑으로 하나님을 알기 전, 그는 아직 하나님을 결정적으로 아는 자는 아님을 간파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안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의 성으로 들어오던 날, 다윗은 너무 기뻐 춤을 추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힘을 다하여’ 추었습니다(삼하 6:14). 그날 다윗은 왕복도 벗고 겸허한 ‘베 에봇’을 입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의 춤은 다른 것이 아닌 그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불타는 열망과 앙모와 사랑이 ‘힘을 다한’ 춤으로 표출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런 영성(靈性)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결코 머리 지식의 대상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의 힘이 되신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고 고백할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생명과 구원의 주였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 자신의 임재였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것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궤’를 보며 기뻐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내며 사울의 딸이었던 미갈이 창문에 서서 성으로 들어오는 ‘하나님의 궤’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궤 앞에서 춤을 추는 자기 남편을 보았습니다. 옷이 흐트러져가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다윗을 모습을 보고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16절). 그리고 미갈은 “왕쯤 되셔서 어떻게 그렇게 옷이 흐트러지는 것도 모르며 춤을 추셨습니까? 하녀들 앞에서 채신머리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다윗을 비판했습니다(20). 이 말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 같은 목동을 왕으로 세우신 사실을 말하면서 자신의 춤은 그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감격 때문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21). 그리고는 “너는 나를 비웃었지만, 저 하녀들은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22). 그리고 23절에서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4).”

 

   여기서 두 사람의 ‘두 세계’를 보십니까? 한 사람의 마음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사랑과 사모와 경외로 불이 타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의 마음은 ‘불 꺼진 창’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법궤’는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의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은 그 임재(presence) 앞에서 기뻐 뛰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궤’의 의미 심장성(significance)에 대한 감각조차, 의식조차 없었습니다. 미갈의 눈에는 그날 ‘하나님의 궤’가 들어오고 있는지 아니면 허술한 나무궤짝 하나가 들어오고 있는지 그 차이점이 보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갈은 밖으로 나와 ‘하나님의 궤’를 맞이하는 일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미갈의 마음, 그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열기도 없는 ‘냉방’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의 열기, 앙모의 열기, 기대의 열기, 사랑의 열기 그 어떤 열기도 없는 싸늘한 방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에 대하여 냉랭한 마음이 불행스런 마음입니까? 그 이유는 그런 마음의 사람 안에서 ‘생명의 활동’ 자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에 모든 것이 꽁꽁 얼어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서서 살아갈 때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지식도 부족하고 인격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부족한 지식은 좀 더 풍성한 지식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계속 살 때 부족한 인격은 좀 더 ‘성결한 인격’으로 변화되고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식과 인격이 자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조건이 분명할 때입니다. 그것은 좀 더 근본에서 마음이 ‘하나님을 열망하는 마음’일 때입니다. 만일 근본에서 마음이 ‘하나님을 열망하는 마음’이 아닐 때,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찬 냉방 같은 마음일 때, 그러한 ‘냉방 마음’을 가진 자의 삶 안에서 생명의 활기가 있기는 어렵습니다. 그 한랭한 방 안에서 지식의 성장도, 인격의 자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이유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관계의 제1법칙을 가르치고 있는 신명기 6장 5절(셰마)의 키워드(keyword)는 ‘사랑(love)’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져라”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으로 바르라”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마음, 뜻, 힘을 다해 “사랑하라(love your God)”고 합니다. 왜 신명기는 이처럼 ‘사랑’이란 말을 핵심 언어로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사랑하면 지식도, 인격도, 바른 청종도, 순종도, 헌신도 모두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냉랭했던 미갈에 대하여 성경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4)”라고 한 말씀은 주시해야 할 경고입니다. 당시 여자가 아기를 못 낳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에 대하여 '냉랭한 방'인 사람, 그는 교회는 다녀도, 신자라고 해도 그 마음은 영적 불임증(不妊症)의 마음이며 영적 무자(無子)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 매우 비참한 일입니다. ‘신자’라는 이름표를 가지고 수십 년 교회 생활을 했는데 여전히 성결하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여전히 굳은 자기중심주의(타락 본성)의 지배 아래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중심을 보면 거기에 ‘불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에 ‘성장’이니 ‘성숙’이니 하는 생명 현상도 없습니다. 그저 어제나 오늘이나 자기 중심주의로 굳어 있는 ‘죽은 인격’이 나쁜 냄새만 피우고 있을 뿐입니다.

 

   파스칼은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으로 아는 것’의 차이를 지적해 말했습니다. ‘마음으로 아는 것’은 관심으로 아는 것이며, 앙모로 아는 것이며, 사랑으로 아는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오직 마음 중심에서의 관심과 앙모와 사랑으로 알게 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마음’에서 열망하고 사랑할 때,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도 ‘산 지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다윗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타는 열망과 사모와 사랑으로 하나님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토록 귀히 여겨주시고 축복 내려주셨나 이해가 됩니다. 다윗에겐 많은 허물도 있었지만 그런 허물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축복의 대상을 삼으시고 그를 통하여 메시아까지 오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다윗적인 열망’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앙모하고 사랑하는 인간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뜻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열망을 생각하며 다음의 찬송을 불러 봅시다.

 

                                                          내 주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주날 사랑하사 구하시려고

                                                         저 십자가 고난당하셨도다

                                                         그 가시관 쓰신 내 주 뵈오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리다가

                                                         숨질 때에 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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